이건 아주 개인적인 내 생각이지만 연애는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진행될 때보다 시작까지의 미묘한 관계가 더욱 설렌다.
평소에는 눈에 잘 들어오지도 않던 어떤 사람이, 어떤 계기로 나와의 관계에 '의미'가 생긴다.
이제부터 나는 그 '의미'를 떠올릴 때마다 그 사람을 함께 기억하게 된다. '의미'는 그 사람이 된다.
나와 그 사람은 나쁘지 않은, 미묘하게 좋은 호감을 가지고 만나게 된다. 하지만 우리는 그걸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거고.
서로의 눈치를 본다. 저 사람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. 하지만 너무 답답하게도, 그 사람의 마음만 보이지 않는다.
(갑자기 이쯤에서 여주인공 벨라의 마음만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던 트와일라잇의 에드워드가 생각난다.)
문자 하나에 그 사람을 떠보는 감정 하나를 실어 보내고, 그 사람의 문자 하나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보고.
이러한 약간은 긴장된 관계에서, 서로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말 한 마디는 내가 말하는 이 관계의 끝이다.
그 결과가 좋든, 좋지 않든 말이다. 연애감정에서 가장 미묘하고 미칠듯한 설렘과 궁금증은 끝이 난다.
그렇다고 이 영화의 감정을 밀고 당기기라는 말로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.
영화에 흐르는 주된 미묘한 감정은 서로를 유혹하는 감정이기보다는 서로가 신경쓰이고 관심히 가면서 서로를 끌어당기는,
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긴장의 끈을 쉽게 놓으려 하지 않고. 누군가의 한 마디로 그 긴장이 깨어질 것만 같은. 그런 관계.
이들은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불륜 관계이다. 이들은 불륜의 피해자로서 본인들 역시 불륜의 죄책감을 갖고 싶지 않다.
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부정하기 때문에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다. 놓는 순간 그들은 끝이다.
이 영화를 보는 내내 흐르는 감정선을 표현하는 음악 Yumeji's Theme. 눈과 귀를 영화에서 뗄 수 없게 만든다.
나는 그들의 눈빛과 손짓, 말하려다 마는 듯한 입술에 나의 의미를 부여해 본다.
왕가위 감독은 사랑에 있어서 이런 미묘한 감정을 나타내는 데 천재다.
'중경삼림'이후로 이 영화가 왕가위 감독과의 두 번째 만남인데, 벌써 다른 것도 보고 싶어졌다.
잠깐 턱 괴고 생각해 본다. 다른 영화들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어떻게 표현했더라? 어떻게 그렇게 엉성할 수 있지?
사랑의 감정이 그렇게 쉽게 티격태격하거나 좀 친절한 것 만으로 생겨나는 단순한 감정이었던가. 그건 모독이다.
내가 말하는 이 미묘한 감정을 알고 있는 당신이라면, 한번 완전히 몰입해서 보세요. 이것이 바로 사랑에 빠지는 느낌.
덧.
머리 떡지고 얼굴에 기름져도 멋있는 사람은 절대 양조위뿐이라고 생각한다.
왕가위감독이 천재라고 생각한 것 하나 더. 그의 테마음악 선곡 센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