Loading
2008. 12. 31. 16:35 - 시맹

먼지를 보다가 문득






이래서 남향이 안좋다니까. 먼지가 너무 잘보여. 가끔은 먼지에 맞아 죽을 것 같다니깐.





소파에 뒹굴거리다가 소파사이에 미세하게 껴있는 먼지를 보고 충격받은 나에게 엄마가 한 말이다.
우리 집은 결벽증 있는 것처럼 깨끗한 것도 아니고 지저분한건 더더구나 절대 아니다.
특히 엄마랑 나는 정리안되있고 지저분한거에 대해 소름돋을정도로 싫어하는데,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.
좀 이상하긴 하지만 나는 어렸을 때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같은 아침프로에서 우연히 집먼지 진드기에 대한 걸 보게 되었다.
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면서 진드기가 보일 만큼 크게 확대해서 보여줬었는데, 그 다음부터는 안 보이던 먼지까지 보인다.
햇빛이 비치는 사이로 둥둥 떠다니는 먼지를 보면 일부러 숨을 안 쉬고 있기도 한다. 뭐 그렇다고 심한 건 아니다.
어제도 방을 오랫만에 한번 뒤집고 청소를 했는데 힘든 만큼 꽤 상쾌한 기분이다. 으으 먼지 싫어.
이걸 먼지 공포증이라고 한다면 나는 또 일종의 고소공포증 비슷한 계단공포증이 있다. 계단 내려갈때 절대 앞을 못본다.
계단 하나하나 보면서 계단 경계를 밟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하는데 얼마전엔 도서관 앞 계단에서 굴러떨어질 뻔 했었다.
이상하게 계단 경계가 잘 안보인다. 그래서 고등학교 때 임원회의때 학교에 계단경계를 금박으로 해달라고 항의했었지.
그래도 의외로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었다. 다 내가 눈이 안좋아서 그런지. 주의력 결핍인지.


타블로의 '당신의 조각들'을 읽고 있는데 그를 다시 보게 됐다. 내가 경험하지 못한걸 정말로 글로써 경험할 수 있게 해준다.
이 책의 단편들은 모두 1인칭 시점에서 씌여 있는데, 나는 이런 에세이같은 문체를 참 좋아한다. 
사람이 단지 숨만 쉬고 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라도 그때 지나가는 생각의 흐름을 잘 잡아내는 작가야말로 최고다.
영화도 마찬가지다. 스토리에 치중해 개인의 심리묘사는 뒷전인 대부분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싫은 이유가 바로 그거다.
결론은 없어도 타인의 삶을 함께 숨쉬며 공감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이 정말 좋다.


나는 매일 일상을 '기록'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. '기록'은 나를 말하는 대표 키워드 중 하나이다. 나는 항상 뭔가를 기록한다.
다이어리에, 블로그에, 수첩에, 메모장에, 수업 노트에, 핸드폰에, 머릿속에 어디에라도.
기록을 시작한 건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면서부터였던 것 같은데, 그때는 숙제처럼 썼던 것들이 아주 소중한 보물이 되었다.
엄마는 항상 이사를 할 때마다 나와 내 동생의 일기장을 가장 먼저 챙겼다. 어렸을때 그림 그렸던 스케치북 같은 것도.
엄마는 그 가치와 소중함을 정말 잘 알고 계셨나 보다. 엄마의 삶도 어떻게 보면 기록하고 생각하는 삶이었으니까.
나는 엄마의 단편을 아직 읽어본 적이 없지만(책이 아니라 기고된 것) 꽤 이름 날렸나 보다.
덕분에 내가 공부를 하면서 가장 많이 혼났을 때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숙제로 글을 쓰다가 맞춤법 틀렸을 때였다.
엄마랑 나는 아주 많이 닮았다. 나는 아빠의 외모와 꿈을 닮았고 엄마의 영혼을 닮았다. 그래서 난 내가 너무 좋다.




   

'daily journal' 카테고리의 다른 글

스물둘  (0) 2009.01.01
청소, 정리  (5) 2008.12.30
SEE-PRESENT, JUISY 그리고 2008  (0) 2008.12.29