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2009. 6. 5. 20:03 - 시맹

난치병





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, 정말 뭐가 원인인지를 모르겠다.
어쩌면 아무것도 없는데 '있는 것 같은데...'라는 생각으로 만들어내고 있는건 아닌지.
요즘은 가끔 생각도 부정적으로 흘러갈 때가 많고
가장 많이 바뀐 점이 있다면 내 단점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.
문제는 단점을 알고서 개선하려는 의지보다는 좌절이 더 많다는 점.
오늘 진로상담교수님과 학기마다 한 번씩 하는 상담을 했다.
이전의 상담은 언제나 그렇듯이 형식적이었다. 학기 잘 지내냐, 고민은 있냐, 없으면 끝.
그런데 이번에는 정말 상담을 하고 싶어서 찾아갔다.
교수님도 알고 나도 알고 문제가 뭔지, 원인이 나한테 있는거라는거 정도는 다 알고 있다.
그런데 그냥 쏟아내는 것 만으로도 나를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.
말하다가 갑자기 눈물이 막 쏟아졌는데 그 와중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고.
대충 두 가지 정도였다. '내 능력에 한계를 느꼈어요' '학교가 외로워요'
능력에 한계를 느끼면 학원을 다니던지 랩에서 나오라고 하셨다. 내 생각에 그건 적절한 해답은 아닌 것 같다.
교수님은 대인관계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면서 -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지, 혹은 완벽주의자는 아닌지 물어보셨다.
나는 내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 적이 거의 없다.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.
그렇게 완벽주의자도 아니지만 욕심쟁이다. 현실에 비해 욕심이 많은 건 사실이다.
어렸을 때는 나는 모난 것 하나도 없이 완벽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요즘 들어 모난 곳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.
내 단점을 인정하면서 스스로 상처받는게 꽤 많은 것 같다. 솔직히 말하면 난 충고나 지적에 너무 약하다.
그럴 때면 나를 방어하려고 드는데, 어떻게 방어해야할지도 잘 모르겠고 그저 받아들이자니 그건 또 싫었다.
인정하는 걸 배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. 요즘들어 너무 많이 우는 것 같다.
마음이 너무 약해졌다.



다이조부.

나는 대답했었다.

우리말로 한자를 읽은 대장부(大丈夫) 라고 번역되는 그 말.

대장부도 아니면서 나는 대장부처럼 씩씩하게
괜찮다고 대답했었다.

실은 하나도 괜찮지 않았는데,
실은 외롭고 허무하고 그래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
실은 누구의 옷자락이라도 움켜쥐고
날 좀 어디론가 데려가 줄래요.

라고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는데.


공지영 / '사랑 후에 오는 것들' 중에서
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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